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르틴 하이데거 (문단 편집) === 전회 === 1927년 10월 하이데거는 마침내 마르부르크 대학 철학과 정교수로 승격됐다. 그리고 1년 뒤인 1928년 [[에드문트 후설|후설]]이 은퇴하자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하이데거는 프라이부르크 대학로 다시 돌아왔다. 그 사이에 하이데거의 명성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었다. 베를린 대학에서 2번의 임용 제안이 있었고,[* 1930년 3월에 당시 독일의 철학교수직으로서는 가장 손꼽히는 자리인 베를린 대학으로부터 초빙 의뢰를 받는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그 시대를 지배하는 철학'을 아직 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며 이를 거절한다. 1933년 9월에 하이데거는 베를린 대학으로부터 2번째 초빙 의뢰를 받는다. 하이데거는 또 다시 그 제안을 거절한다. 프라이부르크 대학을 떠나면 그 동안 프라이부르크에서 해온 대학 개혁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몇몇 대학의 세미나에서 '하이데거'가 읽히고 논의되었으며, 하이데거의 강의에는 철학에 그다지 일가견이 없어 보이는 대중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관계자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의 저자로만 평가받고 싶지 않았다. 사실, 미완의 작품 『존재와 시간』은 문제점이 있었다. 존재의 의미를 '시간'에서 발견했지만, 이러한 설명은 모든 것의 답이 '시간'으로 귀결되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데거가 강조했던 '실존으로부터의 철학'은 멈추어 버린다는 문제였다. 하이데거는 연이은 강의와 저술[* 1927년 여름학기 강의인 「현상학의 근본 문제」, 1929년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는 『존재와 시간』을 보충하는 내용이고, 1929/30년 강의 「형이상학의 근본개념들」에서 비로소 '생생한 고유화의 철학' 즉 전회가 나온다.]에서 이에 대한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 그 답변은 이렇다. "순간"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이데거 학파가 훗날 신비화하는 "전회(Kehre)"라는 것도 이런 기획의 틀 내에서 등장한다. 전회, 그것은 더 이상 '시간성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마다 존재의 '순간'에 집중하게 되었음을 뜻한다. 그렇다면 '순간'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열림의 순간'이다. 자신의 현존재를 실제로 경악에 몰아넣고 불안에 빠뜨리고 권태에 밀어 넣을 때, 그런 무(Nichts)의 기분에 내 자신을 내맡겼을 때, 결단으로 '열리는' 창조와 자유의 순간이다. 이 '순간'에서야 현존재의 비밀이 열린다. '열림'이라 무엇인가? 자연이 인간 안에서 눈을 뜨고 자신이 거기 있음을 깨닫는 것을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셸링]]은 '빛살(Lichtblick)'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자연적으로는 닫혀 있는 자연 존재자가 인간을 통해 인간 내에 (마치 빛살처럼) 나타남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연에게 무대를 제공한다. 이런 이해에 따르면 진리(aletheia, 알레테이아)란, 숨겨져 있던 자연 존재자가 인간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러한 모습에서 울림, 몰입, 경이를 느낀다. 진리가 발견되는 이 사건의 '순간'을 하이데거는 '생생한 고유화(Ereignis, 존재사건)'라고 불렀다. 이제부터 하이데거는 '생생한 고유화'의 철학을 평생동안 펼쳐나갈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